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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의 일상

20년 만에 아이와 같이 가 본 청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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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올라가는 재미도 모르겠고, 힘들게 겨우겨우 올라가도 정상 찍고 다시 힘들게 올라온 길을 고대로 내려오는 게 사서 고생하는 것 같아서 자의로 산에 가본 적이 없다.

그나마 30대가 되고 나서는 산에 한번 가야지, 운동겸 나들이 겸 가야지 벼르고 벼르다.. 몇 년을 더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며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아빠가 매주 청계산에 간다는 얘기를 듣고 쥬쥬와 셋이 한번 가 봐야겠다는 생각에 덜컥 약속을 해버렸다.

약속 당일 아침에 등산할때는 뭐가 필요한 지 아무것도 모르겠어서 쥬쥬 마실 물과 간식만 대충 챙겨서 운동화 신고 출발했다.

 

처음 가보는 산에 들뜬 쥬쥬

 

내가 코스를 본다고 아는 건 아니지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아빠가 제일 짧고 쉬운 길이라며 옥녀봉까지만 찍고 오자고 하셨다.

청계산이 엄청 크구나..산 무식자는 청계산 등산안내도를 보고 엄청 놀랐다.

성남시, 서초구, 과천시에 걸쳐서 있다니, 큰 산이었구나!
청계산은 높이 618 m이며 주봉인 망경대(望景臺)를 비롯하여 옥녀봉(玉女峰) 청계봉(582 m) 이수봉(二壽峰) 등의 여러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23개의 이정표로 중요 포인트가 표시되어 있다. 그 중 옥녀봉은 해발 고도가 375m로 낮은 편이고 소요시간도 1시간으로 표시되어 있어서 아이랑 가기에도 무난할 것 같았다.

 

우리는 원터골 입구에서 등산을 시작했다. 입구에는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체력증진 10계명이 쓰여있었는데

나는 저 중에 1가지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이러니 체력이 바닥인 거구나..

 

초입부터 느끼지 못했던 봄을 만끽하게 해주는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등산 초반에 호기롭게 할아버지 따라나서는 쥬쥬.

 

 

 

등산한 지 30-40분 만에 도착한 원터골 쉼터에서 아빠가 싸온, 초콜릿과 주스로 잠깐 쉬는 시간을 가지고 다시 출발했다.
올라가며 보니 곳곳에 이정표 표시가 잘 되어있어 나 같은 초행자들도 잘 따라 올라갈 수 있게 되어있었다.

날씨가 좋아 새파란 하늘과 초록나무들 보며 오랜만에 하늘 보며 등산하니 허리가 쫙 펴지는 것 같았다.

등산 중반이 넘도록 힘들단 소리 안 하고 자기가 1등이라며 열심히 올라가는 쥬쥬가 신기했다.
아이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등산으로 풀면 딱 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1시간 30분 만에 도착한 옥녀봉!
둥그렇고 널찍하게 벤치가 있어 사람들이 경치도 구경하고 쉬었다 가기에도 좋게 되어있었다.
나도 적당히 힘들고 오랜만에 자연을 느끼며 올라왔더니 등산할만하네라는 생각도 들고 다음엔 혼자 와서 더 높이 가보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 멀리 보이는 운동장 같은 곳이 과천쪽에 있는 경마장이라고 한다.

난 물 하나 달랑 싸 왔는데 아빠가 이번에는 떡을 나눠주셨다.

역시 프로 등산러는 다르구나~ 나도 쉬면서 이것저것 간식 얻어먹으니 체력도 충전되고 등산의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는 안 보이던 나비들도 보고 꽃들도 더 눈에 들어왔다.

내려오는 길은 더 쉽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무릎이 너무 아파 아빠가 챙겨 온 지팡이를 내가 짚고 내려왔다.

하.. 내가 무릎이 가끔 시려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았는데 내리막길 가다 보니 무릎이 꽤 안 좋다는 것을 체험하게 됐다ㅜ
쥬쥬도 내려오는 길에는 보채기 시작하며 자기는 산이 재미가 없다며... 투정을 부렸다.

할아버지와 투닥거리며 내려오다 보니 또 거의 1시간 30분이 지나 있었다.

산에 오르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이따 막걸리에 파전을 먹겠다고 선전포고를 했었기에 하산하자마자 바로 앞에 있는 밥집 소담채에서 보리밥, 해물파전, 장수 막걸리를 주문했다.

하산하고 먹은 해물파전과 막걸리는 잊지 못할 맛이었다!

산에서 내려오며 들리는 밥집들은 어딜 가도 다 맛집으로 느껴질 것 같다!

 

밥 먹으면서도 할아버지랑 신나게 놀던 쥬쥬는 버스 타자 마자 곯아떨어져서 흔들어도 일어나질 못했다.

다음에도 또 산에 오고 싶냐는 질문에는 산은 말고 그 앞에 있던 식당에만 자주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 너도 산 타는 재미를 느끼려면 20년 정도 걸릴 거야, 내가 그랬듯이~